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불한 번역] 1789년 7월 16일 데물랭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팔레 루아얄 연설과 바스티유 함락
    프랑스 대혁명 2022. 12. 15. 09:54

    와, 드디어 끝냈네요. 노션 기록을 보니 이 편지를 맨 처음 읽은 날이 9월 18일인 거 있죠. 세 달 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포스팅처럼 *오역, 의역 주의*만 달고 가기엔 양심에 걸려서 번역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1. 원문에 On이 너무 많아요! On은 (1) 화자가 포함된 '우리', (2)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3) 아직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를 나타낼 수 있는 주격 대명사입니다. 이 편지에서 데물랭은 7월 12~15일간에 파리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묘사해요. 맥락에 따라 (1)과 (2)를 골라 번역했어요. 바스티유 함락 서술 장면에서 (3)으로도 한 번은 썼던 것 같네요.

    2. 고유명사에 맞는 번역어를 찾기 힘들었어요. 무슨무슨 부대와 직책과 장소가.... 웹서핑으로 찾을 수 있는 단어는 주석(PC버전에서만 보입니다.)을 달아 놓았지만, 오류가 많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날짜 구분은 가독성을 위해 제가 집어넣은 거예요. 원문(출처)에는 문단 나누기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만 더. 카미유 데물랭은 천재예요.

    0
    1789년 7월 12,13,14, 그리고 15일에 대해 카미유 데물랭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1789년 7월 16일, 파리.

    친애하는 아버지께,



    이제 편지를 쓰고 부칠 수 있어요. 저 자신도 어제 우체국에서 보초를 섰답니다. 더 이상 편지를 뜯어보는 비밀 사무실은 없어요. 지난 사흘 동안 상황이 얼마나 바뀌었는지요!


    7월 12일:

    일요일[각주:1], 파리 전체가 네케르 씨의 파면 소식에 경악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아무리 사람들의 마음을 달구어 보아도, 어느 사람도 무기를 들지 않았어요. 전 3시면 팔레 루아얄에 가요. 저는 무리 한가운데에서 모든 이에게 우리의 비굴함에 대해 한탄했죠. 그때 먼저 청년 셋이 손을 맞잡고 무장할 것을 외치고 있었어요. 저도 그들에게 합류했어요. 사람들은 제 열의를 보고서 저를 둘러쌌고, 저를 탁자 위로 밀어 올렸는데, 그 순간 제 주위로 6000명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말했어요. “시민 여러분, 여러분께선 국민이 네케르가 직위를 유지하길, 그에게 기념비를 세워주길 바랐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는 쫓겨났습니다! 여러분들을 이 이상 무례하게 도발할 수 있겠습니까? 이 공격 이후로, 그들은 매우 뻔뻔해질 것이고, 오늘 밤 심사숙고하여, 어쩌면 애국자들에 대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을 꾸미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몰려드는 수많은 생각들로 질식할 것만 같았어요. 두서없이 외쳤어요. “무장합시다!” 제가 말했어요. “무장합시다! 모두 초록색 코케이드를 답시다, 초록색은 희망의 색입니다.” 저는 이런 말로 연설을 끝냈던 것 같아요. “비열한 경찰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아, 좋아요! 그들이 저를 지켜보고, 잘 관찰하게 합시다. 형제들을 자유로 부르는 사람이 바로 납니다.” 그리고 권총 한 자루를 들어 올리면서, “적어도 그들은 나를 산 채로 체포할 수는 없을 것이고, 난 명예롭게 죽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한 가지 불행밖에는 닥칠 수 없습니다 - 프랑스가 노예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내려왔어요. 사람들은 저를 껴안고, 애정의 표시를 퍼부었어요. “동지여,” 각각이 저에게 말했어요. “우리가 당신을 지킬게요. 당신을 외면하지 않을 거고, 당신이 바라는 곳으로 갈 겁니다.” 저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또 조국의 병사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저는 가장 먼저 모자에 초록색 리본을 매달았어요. 동란이 얼마나 빠르게 번졌는지요! 그 폭동의 소리는 군대 주둔지에까지 들렸어요. 크라바트 연대[각주:2], 스위스인 부대, 용기병들[각주:3], 왕립 독일 연대[각주:4]가 왔어요. 랑베스크 공Le prince Lambesc은 독일 연대장인데, 말을 타고 튈르리 정원에 들어갔어요. 그는 손수 무장하지 않았던 프랑스 수비대 병사 한 명을 베고 나서, 여자들과 아이들을 쓰러뜨렸어요. 분노가 일었습니다. 그때, 파리에는 한 가지 외침밖에 들리지 않았죠. “무기를 들라!” 그때가 7시였어요. 감히 시내로 나가지 못했어요. 사람들은 무기상을 털었습니다.


    7월 13일:

    월요일 아침에 사람들은 경종을 울렸어요. 파리 선거인단Les électeurs은 시청에 모였어요. 그들은 파리 시장을 중심으로, 7만 8천 명을 16개 군단으로 편성한 부르주아 민병대를 창설했어요. [각주:5] 십만 명 넘는 사람들이 벌써 그럭저럭 무장하고, 무기를 요청하기 위해 시청으로 달려갔습니다. 파리 시장은 농간을 부렸는데, 사람들을 샤틀레 재판소와 생 라자르 수도원으로 보냈어요. 그는 우리가 그쪽에서 무기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만들어 시간을 끌려고 애썼죠. 군중들과 가장 대담한 자들은 앵발리드les Invalides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사령관에게 무기를 요구했어요. 겁먹은 사령관은 저장고를 열어 주었습니다. 저는 사람들 사이에서 숨 막혀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돔 성당 아래로 내려갔어요. 저는 그곳에서 소총들을 볼 수 있었는데, 10만 정은 되어 보였어요. 저도 새것 같은 총검 한 개와 권총 두 자루로 무장했어요.


    7월 14일:

    화요일 아침은 싸움 준비를 하느라 다 갔어요. 사람들은 겨우 무기를 확보하고 바스티유로 갔어요. 바스티유의 사령관은, 갑자기 파리에서 총검 달린 십만 정의 소총을 보고 깜짝 놀랐고, 그 무기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거였는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무척 당황했을 겁니다. 그들은 한두 시간 머뭇거렸고, 누군가 탑을 오르려는 사람들을 쏘아 죽였습니다. 그 사령관, 그러니까 드 로네 백작le comte de Launay은 백기를 내걸었어요. 그는 도개교를 내렸고 사람들이 달려들었죠. 하지만 그는 곧장 도개교를 올리고 산탄을 발사했어요. 아, 프랑스 수비대의 대포가 돌파구를 열었어요. 부르주아들과 병사들 각각이 달려들었어요. 조각가 한 사람이 맨 처음으로 [사다리를] 올랐는데, 누군가 그를 끌어내리고 다리를 부러뜨렸어요. 좀 더 운이 좋은 프랑스 수비대 병사 한 명이 그를 따라 포병의 도화선을 움켜쥐었고, 스스로를 보호했어요. [각주:6] 그러고 나서 요새는 30분 만에 공략되었어요. 저는 처음 대포 소리가 났을 때 급히 달려왔지만, 바스티유는 2시간 반 만에 이미 함락된 상태였어요.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바스티유는 여섯 달을 버틸 수도 있었어요. [이 세상] 무언가가 프랑스 사람들의 격렬함에 맞서 버틸 수 있었다면 말예요. 바스티유는 수령 하나 없는 부르주아들과 병사들에 의해서 함락된 거예요! 맨 먼저 공략에 나선 바로 그 프랑스 수비대 병사가, 드 로네 씨를 뒤쫓았고, 머리채를 잡아서 포로로 만들었어요. 사람들은 그를 시청으로 연행했고, 길 위에서 때려눕혔죠. 그는 얻어맞아 죽어갔어요. 누군가 그레브 광장에서 그의 목숨을 끊어 주었고, 푸줏간 주인이 그의 머리를 잘라냈어요. 사람들은 그것을 장대 끝에 매달았고 프랑스 수비대에게 생 루이의 십자가la croix de Saint-Louis를 주었어요. 동시에, 사람들은 편지를 차압했는데, 스타킹 속에서 파리 시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찾았고, 그것을 시청으로 가져갔어요. 월요일 아침부터 사람들은 모든 편지들을 차압했어요. 왕에게 보내는 편지들, 왕비와 대신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모두 시청으로 배달되었어요. 그 편지들은 개봉되고 공개적으로 낭독되었어요. 우리는 플레셀 씨M. de Flesselles 에게 보내진 편지도 읽었어요. 그는 파리 사람들을 며칠 동안이나 농락하라는 지시를 받았더군요. 그는 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어요. 민중은 그의 재판관석을 빼앗고 그가 의회에서 사회를 보던 방 밖으로 끌고 갔어요. 그가 시청의 계단을 내려가기가 무섭게, 한 청년이 그에게 권총을 가져다 대고 머리를 쏘아 버렸어요. “잘한다!”라고 소리쳤어요. 사람들은 그의 머리를 자르고 창 끝에 매달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그의 심장이 매달린 것도 볼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들고 온 파리를 돌아다녔어요.

    오후가 되자, 나머지 수비대[각주:7]가 손에 무기를 쥔 채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무기들을 그레브 광장의 가로등에 걸어 두었어요. 그들은 몇몇 사람들과 앵발리드 전체를 위해 자비를 구했어요. 또 현장에서 붙잡힌 도둑들도 네다섯 명 있었는데 같은 시각에 처형됐어요. 그건 사기꾼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썩 물러가라고 외쳤죠. 관료들에게 닥친 비극의 끝을 보고 겁에 질리신 치안 감독관께옵선 시청에다 사표를 제출했어요. 압제자라면 모두 파리를 뜨기를 바랐으니까요. 하지만 월요일 저녁부터 5만 명이 항시 순찰을 돌고 있었어요. 그들은 누구도 수도 밖으로 나가도록 두질 않았습니다. 성문이 전부 불태워지고, 대신들이 우르르 도망치는 걸 아버지께서도 상상하실 수 있겠지요. 스위스인 부대와 왕실 근위대footnote] 8. gardes du trésor royal. 어떤 부대인지 찾을 수 없어서 대충 번역했어요. ;; [/footnote]는 싸움을 그만두었어요. 2400만 명이 파리를 점령하고 있었어요. 막 바스티유를 휩쓴 습격 이후로 아무도 잠들지 못했죠. 파리를 둘러싸고 주둔 중인 군대가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들 믿었거든요. 그날 밤엔, 모든 거리들의 불이 밝혀져 있었어요. 우리는 바리케이드를 짓기 위해 거리로 의자, 책상, 술통, 도자기 조각들, 마차를 던졌고, 말들의 다리를 부러뜨렸어요.

    그날 밤에 7만명의 남자들이 무장한 채 있었어요. 프랑스 수비대 병사들이 그들과 함께 순찰을 돌았죠. 저도 밤새도록 보초를 섰어요. 저녁 11시쯤에 저는 생자크 문을 통해 들어온 경기병 부대의 분견대와 마주쳤어요. 우리에게 명령을 내렸던 병사가 외쳤어요. “거기 누구냐!” 그러자 경기병 대장이 외쳤어요. “프랑스여, 프랑스 국민들이여, 우리는 항복하고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좀 의심이 들어서, 우리는 그들에게 우선 무장을 해제하라고 말했고, 그들이 거절했고, 우리는 그들의 호의를 사양했고, 만일 그가 “파리 사람들과 제3 신분 만세!”라고 목청껏 외치지 않았더라면, 홀로 도망갈 순 없었을 거예요. 우리는 그들을 방벽까지 다시 데려다주고 그곳에서 인사를 나눴어요. 우린 몇 시간 동안 그들을 파리 안으로 끌고 다녔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잘 잡힌 질서와 애국심을 보고 길게 감탄했어요. 여자들은 적들의 머리 위로 쏟아붓기 위해서 물을 끓이고 있었어요. 그들은 창문을 통해 그들을 박살 낼 붉게 물든 포석들을 보았고, 그들 주위로는 파리의 셀 수 없이 많은 의용군들을 보았어요. 의용대는 사브르, 대검, 권총과 6만 개 넘는 총검, 거리를 향해 배치된 150 개 넘는 대포로 무장한 상태였어요. 저는 야영지를 공포로 떨게 만든 건 그들의 증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는 바스티유, 병기창에서 가져온 화약이 있었고, 앵발리드에서 발견한 5만 개의 약포도 있었거든요. 제 의견은 베르사유로 가자는 거였어요. 전투가 끝났을 때, 모든 가문들을 치워 버리고 모든 귀족들을 일망타진해서 잡자고요. 저는 십오 분 동안의 공격으로 끝난 바스티유의 굉장한 함락 소식은 베르사유 성과 군대를 깜짝 놀라게 했을 거라고, 그리고 그들이 정신 차릴 시간은 없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7월 15일:

    어제[각주:8] 아침에, 당황한 왕은 국민 의회로 발걸음했어요. 그는 의회에 감사를 표했어요. 그러자 짠, 모든 죄가 사면되었죠. 우리 의원들은 성에서 의기양양하게 왕을 전송했답니다. 장담하는데, 많이도 울었을 거예요. 왕은 자신을 바래다주는 의원들 말고는 경호를 받지 않은 채, 걸어서 돌아갔어요. 타르제Target는 저에게 그게 무척 아름다운 행진이었다고 말해주었어요. 그날 저녁에, 파리에서 있었던 행진이 더 아름다웠지만 말예요. 성직자, 귀족, 평민 출신의 국민 의회 의원 150명이 평화를 전하러 국왕의 사륜마차에 올라탔어요. 그들은 3시 반에 루이 15세 광장[각주:9] 에 도착해서 마차에서 내려 걷게 되었고. 생토노레 거리를 가로질러 시청에 도착했어요. 의원들은 프랑스 수비대의 깃발 아래에서 행진했고, 이렇게 말하며 그들에게 키스했어요. “여기 국가의, 자유의 깃발이 있습니다. 그것은 5만 명의 무장한 남자들, 그리고 붉고 푸른 코케이드를 단 80만 명의 사람들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붉은색은, 우리가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푸른색은, 경이로운 헌법[각주:10]을 위한 것입니다. 의원들도 마찬가지로 코케이드를 달았어요. 사람들은 팔레 루아얄 앞에서, 그리고 로네 씨M. de Launay의 마차를 타고 있는 프랑스 수비대 앞에서 잠깐 멈췄어요. 파리 시는 목이 잘린 사령관을 그의 여분 말들과 함께 참석시킨 거죠. 그는 머리에 시민관[각주:11]을 받았어요. 그는 모든 의원들과 악수했어요. 저는 타르제 옆에서 칼을 빼 든 채로, 그와 대화를 나누며 걸었어요. 설명하기도 힘든 기쁨이 있었어요. 그것은 모든 이들의 눈에서 불타고 있었고 전 그 비슷한 것조차 본 적이 없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폴 에밀Paul-Émile의 승리보다도 더 아름다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함락된 바스티유의 구멍으로 올라갔을 때 그보다 더한 기쁨을 누렸어요. 사람들은 수비대와 부르주아 민병대의 시를 게양해 두었답니다. 열의를 품은 애국자들의 대부분이 그곳에 있었어요. 우리는 기쁨에 도취되어 울면서 서로 껴안고 프랑스 수비대의 손에 입을 맞췄어요.

    아버지의 아들, 데물랭.



    추신. 어제 시청에서, 150명의 의원들과 선거인단들이 평화를 선언했어요. 라파예트 후작은 파리 민병대의 16개 군단의 장군으로 지명되었어요. 프랑스인과 스위스인 부대들은 국민군으로 선언되었고 이제부터는 우리의 16개 군단과 마찬가지로 국가로부터 돈을 받을 겁니다. 바이이 씨가 파리 시장으로 임명되었어요. 그때 바스티유가 헐렸죠. 국왕은 네케르 씨를 다시 불렀어요. 새 장관들이 해임하거나 해임당했어요. 풀롱은 겁에 질려 죽었어요. 로아 신부l'abbé Roy는 목이 매달렸어요. 바스티유의 사령관이나 부하 사령관들 그리고 파리 시장은 참수당했어요. 다섯 명의 도둑들이 가로등에 매달렸어요. 바스티유에서는 양측 모두에서 백여 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했어요. 일요일부터 이어진 극이 막을 내리는 걸 보세요, 전대미문의 일이에요!


    1. 1. 1789년 7월 12일 [본문으로]
    2. 2. Régiment Royal-Cravates cavalerie [직역: 왕립 크라바트 기병 연대]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링크 https://fr.wikipedia.org/wiki/Regiment_Royal-Cravates_cavalerie) 1667년 창설되어서 프랑스 제 1 제정 시기까지 존속했대요. [본문으로]
    3. 3. les Dragons. ‘용dragon’은 이 기병들이 휴대하고 다닌 소총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링크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0019&cid=40942&categoryId=31748) [본문으로]
    4. 4. Royal-Allemand. 이때 분명 독일이 없었을 텐데, 통일 이전 Allemagne/Allemand을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본문으로]
    5. 5. 주명철 리베르테 시리즈 2권에 따르면 4만 8천 명, 16개 지역마다 하나의 군단입니다(p103). 해당 내용은 “13일 월요일 오전 11시 30분”(p101)에 시청에서 공식 발표되었습니다. [본문으로]
    6. 6. <리베르테> 2권 설명: “군인들이 묵는 병사의 앞마당은 비어 있었다. 평소에는 거기로 들어가 전진 초소의 도개교를 지나면 바스티유 요새 사령부로 통하게 되었는데, 로네 사령관은 도개교를 올려서 시위대를 막았다. 용감한 사람 둘이 사다리를 타고 수비대 전친초소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한 사람은 도팽(왕세자) 보병대 병사 루이 투르네였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확인하기 어렵다. 두 사람은 도끼로 도개교의 사슬을 끊었다. 다리가 내려오자 군중이 두 번째 마당으로 들어갔다."(p121) [본문으로]
    7. 7. la garnison. 사실 뭘 가리키는지 잘 모르겠어요. [본문으로]
    8. 8. 1789년 7월 15일 [본문으로]
    9. 9. 현 콩코르드 광장. [본문으로]
    10. 10. une constitution céleste. 사실 constitution이 ‘헌법’이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보통 c가 대문자(C)입니다. 그래서 맞게 번역한 건지 모르겠어요. 형용사 céleste도 일차적인 뜻은 ‘하늘의, 천상의’ 라는 뜻입니다. [본문으로]
    11. 11. 고대 로마에서 수여된, 떡갈나무로 만든 관. 시민을 구한 병사에게 주어지며 공화정에서 두 번째로 영예로운 관이었습니다. [본문으로]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