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불한번역] 로베스피에르 전집 6권 中 1789년 5월 18일 삼부회 연설 관련
    프랑스 대혁명 2022. 9. 25. 23:22

     

     

    일러두기

     

    1. 번역 출처는 Oeuvres de Maximilien Robespierre. Tome 6. Discours: 1re partie. 1789-1790 (구글 북스)의 22~24페이지입니다. 아래 pdf 파일은 타이핑한 원문 텍스트입니다. 

    SUR LES CONFÉRENCES ENTRE LES TROIS ORDRES.pdf
    0.06MB

     

    2. 연설문은 소실된 것 같습니다. 궁서체 부분은 편집진의 연설 당시 상황 설명이고, 본명조 부분은 해당 연설에 대한 편지나 신문기사의 발췌문입니다.

     

    3. 본문에 수록된 각주(1)~(11)는 모두 생략했습니다. 

     

    4. 3의 내용들 중 유용했던 정보: 로베스피에르의 발언 날짜는 le Journal de Devisme (첫 번째 신문기사의 출처)를 통해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성직자에게만 합류를 요청하자는 공개서한의 초안을 제출했지만, 해당 문서 또한 프랑스 국립문서보관소(Archives nationales)에서 찾을 수 없었다고 하네요.

     

     

     


     

     

     

    로베스피에르의 연설

    삼부회

    1789년 5월 18일 회의

    세 신분 간의 협의에 대하여

     

     

        루이 16세는 1789년 5월 5일 삼부회를 개회했다. 그다음 날부터, 특권 신분들은 별도로 구성하기 위해 그들 대표의 자격심사를 시작했다. 제3 신분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별도로 구성한다는 것은 신분별 투표를 승인하는 셈이었다. 신분별 투표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합법적 범위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제3 신분은 성직자와 귀족 대표들의 합류를 기다린다고 선언하며,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의장을 선출하지도 않았다. 

     

        5월 11일부터, 귀족은 스스로 구성되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제3 신분에 의해 채택된 태도를 알게 된 성직자 중에는 타협책에 참여하길 바라는 주임사제들이 많았고, 5월 7일 “다른 신분과 협의하기 위한 교체 가능한 위원들”의 임명을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5월 12일, 귀족은 해당 제의를 173표의 과반수 찬성으로 채택했고, 귀족 대표단은 제3 신분에게 그 결정을 알렸다. 곧 성직자 대표단도 그렇게 했고, 그들은 자신의 위원들을 임명했으며 평민들도 회합을 매듭짓기 위해 그들의 위원을 임명할 것을 권고했다.

     

        제3 신분은 크게 당황했다. 님Nîmes 선거구의 제3 신분의 대표의 14일, 라보 드 생테티엔은 명확히 말해 “이 대표들이 절대 머릿수 투표와 삼부회의 불가분성이라는 원칙에서 물러설 수 없기는 하지만”, 해당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시사했다. 렌Rennes 선거구의 의원인 르 샤플리에는, 회의는 제3 신분이 양보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무용하며, 위원들을 임명하는 것이 적에게 3 신분이 구성되었으므로 공동 자격 심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법적 근거를 허용하는 셈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라보 드 생테티엔과 르 샤플리에의 제의에 대한 논쟁은 그 후 며칠 동안 회의의 대상이었다. 5월 15일, 토론된 문제의 중요성으로 인해 의회는 호명 투표[각주:1]로 의견을 수렴하기로 결정했고, 각각의 의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에 대한 근거를 댔다. 호명은 5월 16일까지 이어졌다. 17일은 일요일이었으므로, 로베스피에르가 발언한 것은 18일 월요일이었다. 그날 의회는 성직자가 반감을 품어 거절할 것을 염려하여 라보의 제의를 채택했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의회는 성직자와 귀족 위원들과 협의하기 위해 16명의 위원을 임명했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공동 자격 심사를 위한 것일 뿐이고, 명시적으로 회의의 서면 교류가 진행될 것”이었다.

     

     


     

     

    로베스피에르가 뷔사르Buissart에게 보내는 편지 (1789년 5월 24일)

     

     

        "… 님의 목사인 라보 드 생테티엔 씨는 귀족과 성직자 위원들과 협의하기 위해 위원들을 임명하자고 제의했습니다.

     

        렌의 대표인 샤플리에 씨는, 그 제의에 반대했고 그게 무용한 동시에 위험하다고 주장했어요…

     

        ... 첫 번째 제의가 대다수의 의견으로 채택됐어요. 그렇지만 발언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두 번째 제의를 기각하지 않을 거라고, 또 제안된 회의가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이 문제를] 재론할 거라고 선언했습니다…

     

        바로 그 위험으로 인한 두려움이 라보 드 생테티엔 씨가 제안한 제의에 대해 내게 꺾이지 않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나를 격렬한 싸움에 말려들게 한 거예요. 전 마지막 연사들 중 한 사람으로서 발언했는데, 앞서 의견을 개진했던 사람들이 거의 전부 그 제의에 찬성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했어요. 특히 제가 내세우는 제의로 누가 더 힘차고 거침없는지 겨뤄야 한다면 말예요. 그래서 저는 같은 목표로 이끄는 것처럼 보이는 세 번째 견해를 내놓을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인쇄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될 우애의 초대장을 성직자들에게만 보낼 것을 제안했고, 초안을 제출했어요. 그들을 국가체에 집결한 국민의 이름으로 재촉하기 위해서, 그리고 귀족들이 저항하기 어려운 선례를 따르도록, 그들과 평민들의 간청 및 노력을 연결하기 위해서, 이에 대항하는 공론을 겨냥하지 않고서는, 또 국민 전체의 경멸과 분개에 몰두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우리가 처한 이러한 상황에서는, 벌 받지 않고 용감히 맞서는 일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임사제들의 의향과 이해관계에 대해 아는 바에 근거해서, 저는 그들이 분열해서 일부가 평민들에게 합류하기 위해 떨어져 나오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요. 그러고 나면 귀족들 중 일부도 그들을 모방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 진영의 많은 대표들이 유권자로부터 머릿수 투표가 아니면 투표하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으니까요. 그 진영에서 미덕과 재능으로 가장 두드러진 자들은 고결함과 애국심의 예시로써 서둘러 불멸의 이름을 남기려 들겠죠. 따라서 반대 진영에는 공적인 증오심에 바쳐진 귀족들밖에는 남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우리가 곧 합류할 두 신분과 함께 국민 의회를 선포하는 데 어떤 장애물도 놓을 수 없다면, 쉽게 제거될 것입니다. 

     

        하지만 토의가 앞서 제안된 두 제의만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임시로 의회 내에 일종의 경찰 조직을 설치하기 위해 지명된 위원들은 사람들이 저의 제의를 지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저에게 확실히 나쁘게만 보였고, 투표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의 불완전성에 영향을 받은 거였어요. 그건 우리가 곧 손볼 수 있겠죠. 그렇기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제가 내놓은 견해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어요. 그들은 그것이 먼저 제안되었더라면 의심할 여지없이 채택되었을 거라고 확신시켜 주었어요."

     


     

    Journal manuscrit attribué à Devisme, 1789년 5월 18일, p. 11-12 (9).

     

     

        “모든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한 열의와, 그들 추락의 재빠름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들은 촛불로 산화하러 가는 나비를 닮았다. 이는 생토메르St. Omer 의 피뢰침에 대한 우아한 변론으로 알려진 아르투아의 변호사 로베스피에르를 계기로 오늘 아침에 다시 한번 떠오른 생각이다. 그는 확신에 차 경솔하게 말했고, 우리에게 무거운 침묵을 요구했다. 자신에게 새롭게 말할 거리가, 특히 세 신분의 결합을 위해 제시할 확실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30분에 걸쳐 장광설을 늘어놓은 후에, 그는 자신이 준비해 온 성직자들에게 보내는 담화문이라는 그 ‘확실한’ 방법을 진술했다. 그 글은 수사 기법 투성이인 초청장에 불과했다. Parturiunt montes [각주:2]…”

     


     

    Affiches d'Artois, du Boulonnois et du Calaisis, n° 52, P. 483.

     

     

        15일에도 호명 투표가 계속되었다. 의회의 다수 구성원이 유창하고 매우 분명한 두 견해에 대해 토론했다. 아르투아의 대표인 드 로베스피에르 씨는 마지막 연사들 중 한 사람이었는데, 성직자 신분에게만 대표단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이 제의는 유창하게 뒷받침되었다. 만약 더 일찍 제시되었더라면, 그의 의견은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1. 1. appel de bailliage. ‘appel’은 “부름, 점호, 호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bailliage’는 좀 더 해석하기 곤란했는데, 마찬가지로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역사] (왕·영주의 이름으로 재판하던) 대법관 재판소[재판권, 관할구, 청사]” 라 하고, 영어 번역어는 관할 구역, 전문 분야를 뜻하는 bailiwick에 해당하네요. 영화 <원 네이션>에서 선거구명의 알파벳 순서로 호명 투표하던 장면이 생각나서 일단 위와 같이 옮겼습니다만, 번역어에 자신이 없네요. [본문으로]
    2. 2. 크게 떠벌리기만 하고 실제의 결과는 작은 것. (네이버 사전) 의역하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본문으로]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