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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한번역] 1789년 10월 8일 데물랭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6 louis ou bien un lit."
    프랑스 대혁명 2022. 8. 18. 14:42

    *의역, 오역 주의

     

    아래 이미지 파일의 출처는 구글 북스에 공개된 <Correspondance inédite de Camille Desmoulins>입니다. (링크개인 블로그의 영어 번역을 참조했습니다. (Camille to Jean-Nicolas Matton p 42)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카미유 데물랭이 가엽기도 하고, 영 버르장머리 없어 보이기도 하네요. 

    여러 날에 걸쳐서 작성된 편지로 추정됩니다. 문단 나누기+들여쓰기가 될 때마다, 어조가 많이 바뀌어도 감안하고 읽어 주세요.

    01234
    아버지에게 보내는 카미유의 편지. 10월 5일과 6일 이후 파리로의 왕의 귀환. 그리고 가구를 사는 데 쓰기 위한 몇 루이에 대한 반복되는 부탁.

     

     

    1789년 10월 8일.

     

    친애하는 아버지께,

     

        저는 미라보 댁에서 매력적인 두 주를 보냈어요. 그렇지만 제가 그분께 아무짝에도 쓸모없단 걸 알아채고, 그만 작별을 고한 뒤, 파리로 돌아왔어요. 우리는 좋은 친구로서 다시 만나기 위해 헤어졌어요. 그분께선 기분 내킬 때마다 한 주 정도 보내러 오라고 절 초대하셨어요. 베르사유에서 머무는 동안, 그분은 벨렘Belesme의 도시에 관해 자신의 직무대리인과 알랑송Alençon의 경리관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저에게 맡기셨어요. 전 그걸 써냈죠.

     

        사람들이 극찬한 신문들 중에서 두 부를 보냅니다. 그 칭찬들은 무척 늦게서야 전해졌어요. 모든 사람들, 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아부를 떨지만, 제가 그런 소리 들을 만큼 엄청 부자는 아니잖아요. 일전에 드 몽모랑시de Montmorency 씨, 드 카스텔란de Castellane 씨, 시에예스 신부님, 타르제Target는 저의 <가로등>[각주:1]에 대해 가장 호의적인 이야기들을 해주셨어요. 이 유명인사들께선 제 욕구들을 드러내는 것에다 자연스런 수치심을 보태셨어요. 그런 욕구들을 드 미라보 씨에게선 보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확실히, 아버지는 저한테 정말 부당해요. 적들과 절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문필가, 애국자들, 성깔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 자리를 찾았잖아요. 다행스럽게도, 저는 제 조그마한 명성에 만족해요. 권위를 탐내지도 않고요. 제 주위에는 제가 질투심을 품을 만한 인물이 몇 없어요. 하지만 그런 점도 제가 서적상에게는 40에서 50 루이를 벌어다 주었던 저의 <가로등>에서 12 루이[각주:2]밖에 건지지 못했던 일을 막아주진 않았어요. 서적상에겐 천 에퀴를 벌어다 주었던 저의 <자유 프랑스>에서도 저는 30 루이밖에 건지지 못했죠. 제 작품에 대한 떠들썩한 소문들은 저에게로 모든 채권 업자들을 유인했는데, 그들은 저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어요. 제가 그들의 소송행위로부터 저의 덧없는 명성의 새 향유권을 방해받길 원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채무관계는 거의 없지만, 마찬가지로 돈도 없어요. 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요. 아버지 연금 받으실 시기가 되었으니까, 또 촌구석은 물가가 안정적이니까, 저에게 6 루이만 보내주세요. 여기에 왕과 국민 의회가 머물러 있고, 저도 파리에 머물기를 바라요. 저는 가망 없고 불공정한 고향을 버릴 거예요. 전 가구를 좀 얻고, 어디 구역에 전입 신고를 해서 이 명성의 순간을 이용하길 바라요. 침대 하나에 시트 한 벌을 거절할 만큼 잔인하지는 않으시겠죠? 저한테 재산이 없지, 가족이 없던가요? 제게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는 게 사실인가요? 하지만, 아버지께선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그 가구들을 소유하는 데 30 아니면 40 루이는 들잖니.’ 저는 이렇게 답하렵니다.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지난 6년 동안 저에게 지운 빚을 갚아야만 해요. 전 6년 동안 전 필요한 것들을 갖지 못했으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께서 저한테 가구 한 번 사주신 적 있나요? 가구가 갖춰진 방의 터무니없이 비싼 집세를 낼 수 있도록 해 주신 적은 없지 않은가요? 아버지 돈을 한 푼씩, 두 푼씩 보내주는 방식이라니! 그걸로는 절대 가구나 주소지를 얻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제 운명이 그 주소지를 얻는 데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 주소지가 있다면 의장이, 파리 코뮌을 대표하는 구district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탁월한 작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미덕, 재능, 일에 대한 열정, 성격, 그리고 충실한 봉사심이 있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생한 증거라니,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요! 벌써 10년 동안 저는 이런 식으로 불평해왔죠. 저한테는 혁명을 일으키고 프랑스를 뒤흔드는 편이, 우리 아버지로부터, 꼭 한 번만이라도, 루이 금화 50개 정도를 얻어내서, 제 사업을 시작하는 것보다 더 쉬웠어요. 대체 아버진 어떤 분이신지! 당신의 그 모든 지성과 미덕으로도 아들의 진가를 보는 법을 알지 못하신다고요? 아버지께선 언제나 절 평가절하하셨죠. 언제나 절 방탕아에 재산 축내는 놈이라고 부르셨고, 전 그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인생 내도록 저는 주소지를 좇았고, 사업을 좇았어요. 기즈Guise 그러니까 제가 본가를 떠난 후에, 당신께선 아들놈이 파리에서 호텔[각주:3]이 아닌 다른 숙소를 얻는 걸 바라지 않으셨어요. 그러는 동안 그놈은 서른 살이 되었네요. 아버지께선 언제나 다른 자식들이 있다고 말씀하시죠! 맞아요, 그런데 자연은 저에게만 날개를 달아 주었고, 제 동생들은 저를 땅에 붙들어 매는 필요의 사슬을 느낄 수 없다는 차이점이 있어요.

     

        틀림없이 아버지께서도 위대한 혁명이 일어났다는 걸 깨달으셨을 거예요. Consummatum est.[각주:4] 왕, 왕비, 왕세자는 파리에 있어요. 50,000 명의 남자들과 10,000 명의 여자들은 대포 22 문을 끌고 그들을 찾아다녔어요. 근위병 7명, 국민 방위대 6명, 여성 한 명, 부르주아 6명이 살해당했어요. 왕실 일가가 도착했을 때, 저는 폴-에밀Paul Emile의 마차 뒤에서 퍼스Perses 가 여섯 식구들이 우는 것을 봤어요.[각주:5] 왕과 왕비도 울음을 터뜨렸죠. 그들은 밤늦게서야 도착했어요. 군중은 외쳤습니다. “우리는 제빵사와, 제빵사 부인과, 빵집 조수를 데려왔도다.” 어제, 튈르리 궁에서, 왕비는 창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녀는 저잣거리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했어요. 궁정의 부인들과 시장의 부인들 간의 일종의 회담이 교차로에서 개최된 셈이죠. 왕비는 아르투아 백작과 콩데 공을 위해 자비를 구했어요. 시장의 부인들은 자비를 베푸는 데 동의했고, 무척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어요. 오늘 그 여인들은 마찬가지로 파리로 오는 국민 의회 의원님들을 마중 갔답니다. 안녕히, 저에게도 할 일이 수없이 많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절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 제가 이곳에서 침대 하나를 사도록 해주실 수 없다면, 사서 보내주셔도 돼요. 침대 하나를 거절하실 순 없으시겠죠? 기즈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듣기 싫다고 말씀드렸었죠. 고향에서 아버지는 영향력이 없고, 저도 더 말할 필요 없이 없어요. 바로 그게 제 마음을 멀어지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절 위해, 아버지의 장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세요.

     

    데물랭.

     

    우체국 마감 시간이 지났는데, 저는 제 필요를 더 강조하기 위해 다시 편지 봉투를 열었어요. 제가 기즈에 대해 아는 모든 건 사촌 데프빌Deviefville이 보낸 편지를 통해서예요. 그 편지들은 철학, 애국심 및 평등의 정반대 것인 우리 고향을 버리겠다는 제 생각을 확인해줘요. 저는 파리에서 명성을 쌓았고, 사람들은 큰 일에 대해서도 저와 의논하곤 해요. 사람들은 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저보다 자기 책자를 더 잘 파는 글쟁이는 없어요. 전 주소지만 갖고 있지 못할 뿐이에요. 제발, 절 도와주세요. 6 루이나, 침대 하나라도 보내주세요.

     

     


     

    1. 1. 카미유 데물랭의 판플렛 중 하나인 <Discours de la Lanterne aux Parisiens>을 가리킵니다. À la lanterne! (놈들을 죽여라!)은 관용어구였는데, 네이버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어요. "프랑스 혁명 당시의 유행가 《Ça ira》의 후렴인 ‘Ah ça ira, ça ira, ça ira, les aristocrates à la lanterne!' 「귀족들을 가로등에 매달아라」에서 유래" [본문으로]
    2. 2. “이 시기의 리브르(livre)는 무게 5그램 미만의 은에 상당하는 주화로서 처음 주조되었을 때는 미터법 프랑(franc)보다 가치가 약간 적었다. 쑤(sou)는 빠리에서 제조된 리브르의 1/25이었으며, 드니에(denier)는 리브르의 1/250이었다. 이 시기의 에뀌(écu) 은화는 3 리브르와 동등했으며 루이 금화(루이 13세가 처음 주조)는 약 24프랑과 맞먹었다.” 알베르 마띠에, <프랑스 革命史>, 창비, p10 각주 1), 재인용. [본문으로]
    3. 3. 원문 단어는 ‘hôtellerie’라는 단어입니다. 프랑스어 위키피디아에서는 18세기 이 단어가 Hôtel 대신 사용되었으며, “여행자들이 머물 수 있고 고객을 위한 음식을 제공하는 시설”이었다고 설명하네요. 현대 호텔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더 넓은 의미의 용어였던 것 같아요. 앞서 링크한 영문 번역에서는 inn (주막, 여관)이라고 번역했고요. 아버지가 돈 안 준다고 한탄하는 대목에서 호텔에 장기투숙했다는 내용이 어색해 찾아보았습니다. 데물랭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숙소에 묵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본문으로]
    4. 4. 라틴어 경구. ‘일이 완결되었다.’, ‘다 이루었다.’라는 뜻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마지막 말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5. 5. A l'arrivée de la famille royale, j'ai cru voir six familles de Perses derrière le char de Paul Emile. 알파벳 철자 병기한 두 고유명사가 정확히 무엇을(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르겠어서 원문을 달아 놓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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